NEWS | 2019.03.14

대기업의 10000분의1이 될 것인가

 

중소기업의 90분의1이 될 것인가

 

특별한 것 없는 평범한 20대의 결단과 꿈의 귀착

 

insight into Milbon

 

ROOTS | 2019.0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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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이 회사에서 특별히 가진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정년한 사장실에서 이야기를 한 사람은 밀본 그룹 CEO 사토 류지

 

2008년부터 현직에 올라 10년을 맞이했다

 

사장이란 직책은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일까?

「저는 혈연관계도 없고 대졸의 채용과정을 거치지도 않은데다가 중도채용입니다. 정말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습니다.
이야기 하는 모습은 경쾌했다. 특별할 것 없는 중도 사원이 사장이 되는 것이 가능한 것일까? 그것도 변화가 격심한 미용이라고 하는 세계에서.

 

대기업에서 경험한 벽과 원점, 사소하고 작은 분야에 오히려 꿈이 있다.

기지의 거리, 사세보. 이 곳에서 태어나고 자란 사토 소년은 오사카 만국 박람회가 개최되기 전부터 외국인과 친숙하게 자랐다.

그렇기 때문에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과 만나는 일을 하고 싶다」고 어릴 때부터 막연하게 꿈을 안고 있었다.

부모의 추천도 있어서 나가사키 고등 전문 학교에 취학하게 된다.

 

등용문은 여러 가지가 있고 나올 때 그것이 본인의 천직이 되어 있으면 된다.

젊은 사람들에게 자주 하는 말입니다.

저는 원래 미용 업계에 흥미가 있었던 것은 아니고 세계에 있는 다양한 사람들과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었습니다.

예를 들어 신문 기자 라던가.

 

그러나 결국 신입 채용으로 입사한 곳은 대기업 제약 회사.

 

그것도 고등 전문 학교 졸업이었기 때문에 공채 채용도 아니었고 당시 1980년이 되기 전쯤의 시기였기 때문에 무엇보다도 취직이 우선되어 취업에 유리한 고등 전문 학교에 부모님이 원서를 써서 합격을 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대졸] 이라고 하는 티켓을 이 시기에 잃은 것이죠

하지만 일단 회사에 입사를 하면 영업직이 될 수 있는 찬스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확실하게 실적을 쌓으면 영업직이 될 수 있지는 않을까….

대졸 티켓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 스타트 출발점에도 세워주지 않는 것이 대기업이라고 하는 세계의 관례였습니다 

결국 이 기업 안에서는 제가 원하는 일을 할 수 없겠다 라고 생각해서 퇴사를 했습니다

입사해서 2년도 지나지 않았을 시기에 퇴사를 하여 앞으로 계속 무직으로 있을 수는 없는데 어떻게 하면 좋을까 고민하고 있던 시기에 모교의 선생님께서 2군데 기업의 인사 담당자를 소개시켜 주실 수 있다고 하시며 취업이 가능할 수도 있다고 제안해 주셨습니다.

 

한 곳은 IT계의 대기업, 다른 한 곳이 밀본이었습니다.

밀본? 아직 아무도 모르는 회사. 당시는 사원수 90명 정도. 중소도 아닌 영세 기업에 가까웠다고 생각합니다.

 

회사의 규모과 자신의 존재 가치라고 하는 것은 반비례 합니다.

제약 회사에서 [큰 조직이야말로 자신의 역량이 감소한다]라고 하는 것을 경험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이 사실을 통감하고 있었습니다.

“10000명 사원이 있는 대기업 이라고 하면 10000분의 1의 존재 가치밖에 없다. 밀본이라면 90분의1. 901이 되어 나답게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라고 생각해서 밀본에 입사하게 되었습니다. 강한 의지가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걸로 충분해요.

 

고심하며 일을 하고 있던 매일. 사장님과의 우연한 대화로 보이기 시작한 미래 

자신의 힘으로 일을 할 수 있는 중소기업에 취직은 했지만 [그만두고 싶다]라고 생각하는 날의 연속 

본인이 하고 싶은 일을 상사에게 말해도 돌아오는 대답은 [아직 이르다] 였습니다. 그 때 사장님과의 우연한 대화로 활로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낙관적으로 입사했지만 밀본에 들어와서 2년간 솔직히 그만 두려고 생각한 날들이 계속 되었습니다.

 

처음에 배정된 곳은 펌 시술 시에 사용하는 롯드와 롤러 2개만 판매하는 영업부. 

상사와 저 2명이 팀으로 롯드와 롤러를 가지고 도매상을 방문하는 일이었습니다. 

고객이나 살롱도 아닌 도매상 

상품을 실제로 사용하는 사람과는 거리가 멀고제품을 누구에게 팔고 있는 것인지 언제까지 이 일을 해야만 하는 것인지 고심이 계속되었습니다.

 

화장품 쪽이 더욱 판매하기 쉽다고 생각하여 몇 번이나 이동을 타진했지만 [아직 이르다]라는 대답만 돌아올 뿐, 그 다음해도 설마 했던 같은 부서로의 영업 배정

게다가 도쿄로 전근이 되었습니다. 겨우 친한 동료도 생겼고 오사카에 있고 싶다고 희망하고 있었는데 말이에요.(웃음)

 

회사를 그만두어야 하나 라고 생각하고 있던 찰나에 본사에 있는 어느 부서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외국과]라고 하는 잘 알 수 없는 이름의 부서.

당시는 아직 1980년대 초기 중소기업이 [외국]같은 것은 생각할 수 없던 시대였습니다.

 

 

마침 그 때 사장님이 계셔서 [“외국과는 어떤 부서인가요?]라고 물어봤습니다. 돌아온 대답은 아래와 같았습니다.

 [지금 시대에 외국과라고 하는 부서가 있으면 취업 준비생이 흥미를 가집니다]

놀랍죠. 당시 밀본에서 해외사업은 전혀 매출도 오르지 않았던 시기입니다.

그렇지만 사장님은 이렇게 말씀을 이어나갔습니다.

[지금은 주목을 모으기 위한 부서로 존재하지만 미래에는 비즈니스의 중점을 두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 이 회사에는 꿈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신기하죠.

유년 시절부터 막연하게 생각하고 있었던 [해외에서도 일을 하고 싶다]라고 하는 가능성을 발견한 것입니다.

[눈앞의 일은 솔직히 재미가 없다. 입사해서부터 몇 번이나 퇴사하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사장님과의 우연한 대화로 저의 꿈을 이룰 수 있는 미래를 실현하는 것

밀본에서는 그 가능성이 있다고 확신할 수 있었습니다.

 

영업 시절에 배운 청탁병탄 : 도량이 커서 선인이나 악인을 가리지 않고 널리 포용함

일이 즐겁다고 생각할 수 있게 된 것은 대리점 영업을 하기 시작하여 몇 년 인가 지났을 때부터였습니다.

당초 밀본의 지명도는 업계에서도 낮고 좀처럼 문의도 없었습니다.

평일에 고객이 있는 곳에 가도 더욱 유명한 메이커가 우대를 받고 있는 상황이라 일부러 토요일에 방문을 하였고 신기하게도 매출이 올랐습니다. 사고방식, 접근 방법을 바꾸면 상대도 마주해주었습니다. 현장에 가면 알 수 있는 것은 정말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알고 있다]라고 하는 생각은 일선을 넘어버리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미용실의 오너와 다투고 상품을 그대로 반품 당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저는 영업을 하는 사람으로써 올바른 조언을 해드리고 싶다는 마음이었습니다만 정론이 반드시 상대를 위하는 것만은 아니며

[이런 생각을 가진 밀본과는 협업하고 싶지 않다]라는 이야기였습니다.


[청탁병탄] 이것을 체감한 일화였습니다.

정론만을 추구하기 때문에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은 아니며 그렇다고 하여 의미를 퇴색시켜서도 안 된다. 청탁의 사이에 인간의 본성이 있다.”

 

미용실의 흥미로움을 알게 된 것은 틀림없이 영업을 담당하는 시절의 10년이었습니다.

그러나 어느 날 갑자기 사장님이 [상품기획 마케팅부 이동]이라고 지시하였습니다. 학교에서도 공부해 본적이 없는 분야였기 때문에 불안해하고 있었는데

[신상품을 기획할 때 5가지를 해서 한가지만 맞아도 좋다] 프로야구 선수로 빗대어 2할을 치면 그럭저럭 치는 선수라고 들을 수 있죠? 라고 사장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사실 그 이야기도 저를 설득시키려고 했던 말씀으로 실제 일을 할 때는

[5가지 기획을 하면 4가지는 맞춰야 한다]라고 듣고 놀란 적이 있습니다. (웃음)

그러나 궁지에 몰리면 인간은 어떤 일도 학습할 수 있게 되죠.

2년 정도 지나고 겨우 기획에 적응 됐을 때 시대가 저의 편을 들어주었습니다.

 

90년때 미용시장은 크게 변화했다.

90년대가 되고 베이비붐 세대라고 불리는 볼륨 존 세대가 소비의 중심이 되었습니다.

그때까지 일본의 미용실은 [미국과 유럽]을 모티브로 하고 있었지만 베이비붐 세대 사람들은 [가공한 유럽]이 아닌 [일본인으로써 아름답게 보이고 싶다]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밀본에서도 그 풍조에 따라 1993년에 일본인 모델을 사용한 포스터를 전개했습니다. 일본인으로써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시대가 된 것입니다.

 


2002년부터는 새롭게 헤어 컬러가 미용실의 스탠더드 메뉴가 되었습니다.

젊은 층의 패션 컬러, 연령이 증가함에 따른 그레이 컬러.

헤어 컬러는 폭 넓은 층의 니즈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인구 동태부터 시대의 흐름을 먼저 예측하여 업적을 늘려간 시기가 90년대부터의 20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인구동태를 보고 전략을 세운다.]이것은 영업시절부터 세우고 있던 가설이었습니다.

역시 현장을 보고 있으면 희미하게 보이는 것들이 있습니다. 그것을 기획, 마케팅이라고 하는 입장이 되었을 때 본격적으로 실행에 옮겼습니다.

마침 상장하는 타이밍이었기 때문에 사장님에게 제가 만든 마케팅 자료를 전달하고 매번 의논하여 전략을 결정했습니다.  

밀본이 한 단계 위로 상장할 시기에 꼭 도움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2002년에 꿈을 실현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넥스트 프레젠츠] 미용의 가치와 미래를 테마로 한 메시지 이벤트를 기획, 실시한 후 그때의 감독관님에게 [중국 시장을 보고 왔으면 좋겠다]라고 하는 제안을 받았습니다.

국제과 등에 더 적합한 인재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출장을 다녀와서 의견을 말해달라고 하여 [아시아에 진출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보고하니 저에게 그 업무가 맡겨졌습니다.

2008년에 상해, 2009년에 한국에 거점을 두고…2010년에 글로벌 선언

전 사원에게 본격적인 세계 전개 구상을 발표하였습니다. 이러한 해외 전개의 수년을 넘어서며 코우노이케 사장님에서 저에게로 바톤이 넘겨졌습니다. 

신입사원 시절어쩌면 더 어렸을 때부터의 꿈이 실현되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변해가는 미용시장의 앞으로는 

2000년대에 들어서부터 미용시장은 변화의 시대라고 생각합니다. 

미용실이 개인에서 조직적으로 되어 증가해왔습니다. 

저희는 인구동태를 보고 전략을 생각하고 있습니다만 2030년까지는 1인가구 세대가 대폭 증가할 것으로 예측됩니다 

1인가구가 되고 현재는 SNS, 디지털 소통 시대이기 때문에 누군가와 리얼 커뮤니케이션이 하고 싶겠죠? 

미용실은 앞으로 마음의 여유까지도 제공해가는 장소가 되어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는 어딘가 비일상적인 젊고 현란한 이미지가 강했다면 앞으로는 일상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는 존재가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현 시점에서 수년간 구상해 왔던 화장품 사업을 시작하였습니다.

매일 사용하는 헤어 케어, 스킨 케어까지 미용실이 기획할 수 있다면 어떨까 생각했습니다만 화장품 사업은 시장이 넓고 밀본의 현재 인지도로는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지금까지 밀본은 미용 업계를 대상으로 한 제품만을 만들어 왔습니다만 앞으로는 일반인 까지도 포함한 시점으로 전개를 해야만 합니다.

파트너를 수년간 물색하고 있던 중에 코세의 코바야시 사장님과 화장품 메이커의 미래에 대해 이야기 하였습니다

그리고 물밑 접촉하여 이야기를 진행한 후 자본 업무 제휴를 릴리즈 하였습니다.

이것이 2017년의 일입니다.

 

미용실은 편의점보다도 훨씬 점포수가 많습니다. 소매로써는 굉장히 강한 분야입니다

미용실이라고 하는 장소가 커트나 컬러 등의 기술을 판매하는 것이 아닌 [아름다움]을 판매하는 장소가 되었으면 합니다.

[1인 가구 시대가 늘어나고 개인화가 진행되는 생활 환경 속에서 미용사와의 이야기를 통해 마음의 케어를 하고 나의 고민을 잘 알고 있는 미용사가 선택한 케어 상품을 산다. 매일 가까이 다가가는 아름다움을 제공한다]라고 하는 것이 앞으로 미용실의 존재가치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존재가치에 대해 세계를 향해서도 발신하겠다는 꿈을 가지고 실현해가고자 합니다.